유튜브에서 이것저것 영상을 뒤지다가 故 신해철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게 됐다. 물론 세상을 뜨는 연예인은 정말 많다. 생을 마감한 사람 숫자가 더 늘어난 것은 아닐 테니, 사실은 부고란에서 내가 알아보는 사람들 숫자가 늘어났다고 하는 편이 맞을 거다. 그만큼 죽음이 익숙해져 간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신해철의 사망은 처음 들을 때도 충격이었고, 다시 보며 회상할 때마다 슬픔이 특별히 더 많이 몰아친다.
그는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최애 가수였다. 각종 시디들을 구비해서 소니였는지 파나소닉이었는지 근사한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들려줬는데, 신세계 같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는 듯한 자유로운 행보, 파격적인 화법 등은 매력적이었다. 나도 금세 신해철의 팬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로 돈이 생기자, 나는 신해철의 음반을 죄다 샀다. 절판된 건 어쩔 수 없었고 음반점에서 파는 건 다 샀다. 비로소 팬다운 팬이 된 것 같아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은 뻥 좀 보태면 절반이 신해철로 채워졌다.
정말로 좋아했던 가수였는데, 신학교 가면 무슨 속세와 절연을 해야 하는 줄 알았던 나는 그의 시디를 다 처분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 나눠준 것 같다. 싸이월드도 폐쇄해 버리고 떠난 덕분에 20대 중반 이전 사진이 거의 없다. 두어 장이라도 남아 있는 건 그 시절, 인화를 위해 인화 전문 사이트에 올려뒀던 것이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급히 다운 받은 덕분이다. 그 북새통을 거치면서 신해철을 사랑했던 나의 시절도, 그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게 지나가 버리게 되었다.
다만 생각해 보면, 나는 신해철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신해철과 함께 보냈던 나의 10대 후반, 20대 초반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니 씨디플레이어를 중고로 사 와서, 나도 드디어 휴대용 씨디플레이어를 갖게 됐다고 기뻐하면서, 소위 껌 건전지를 사러 친구와 강변 테크노마트를 찾아가던 그 시절이 말이다. 하고 싶은 음악도 거침없이 하고, 하고 싶은 발언도 주저 없이 하던 신해철을 좋아하면서, 나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던 내가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싶은 말도 매번 꾹꾹 참고, 하고 싶은 일도 뒤로 미루고 사는 요즘의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신해철로 대변되는 내 옛 시절에 대한 향수로 번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인생은 참으로 예상치 못한 정거장에 나를 내려놓는다.
20대 그 시절에 살던 동네에 얼마 전에 찾아갔다가 깜짝 놀랐다. 건물이 철거된 수준이 아니라, 그 일대의 지반을 다 깎아내고 수십 층 규모의 주상복합 빌딩이 여러 채 들어서 있었다. 어디쯤 내가 살던 집이 있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내심, 여전히 하숙집 주인댁이 살고 있으면 인사도 하고 올까 생각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가버린 건 신해철만이 아니었다.
다시금, 옛날이야기를 하는 노인은 그 시절을 현재로 사는 것임을 생각해 보게 된다. 신해철 노래를 다시금 들으면서 슬퍼지는 건 나의 현재가 너무 구닥다리인 것 같다는 자괴감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