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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를 조장하는 사회, 희망을 찾는 공동체

서울주보에 이번 7월 6일 자 원고로 기고하신 정민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한창 박해가 진행 중이던 조선시대에, 천주교 신자들 모임의 중심에 약사들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박해를 피하고자 한적한 곳을 택할 것 같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약국의 뒷방에 모임방을 준비하여 모임을 진행하되, 관아에서 사람이 나오면 즉각 빠져나갈 수 있도록 비밀 통로를 팠다는 것이다. 출구는 다른 집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었기에, 천주교 신자들은 일대 집을 전부 매입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성 강완숙도 신부를 숨기던 곳을 중심으로, 둘러싼 방들을 전부 매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설명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현이 이것이었다. “이것이 천주교 신자들의 오가작통법 파훼의 일환이었다.”라는 표현이었다.

오가작통법 파훼법이 존재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해 볼 법한 일이었지만,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다. 매번 오가작통법 뒤에 숨어 있는 절망만을 느끼며 씁쓸해 하는 것으로 그치곤 했던 것이다. 사실 오가작통법은 인간의 비참함을 확인하게 만드는 법이다. 나 하나의 생존을 위해서 주변 사람을 희생시키는 비열함을 생존 논리로 정당화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생존 하나를 위해서 의심하고, 희생시키며 간신히 나 하나만 살리는 동물적 본능에 충실하도록 사람을 몰아붙이는 법이 오가작통법이다. 

나는 이것이 나치 독일의 아사 감옥과 원리 자체는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사 감옥에 사람을 집어넣고 물 이외에 어떠한 음식도 제공하지 않으면, 허기짐이라는 본능에 굴복당한 인간은 결국 자기 배설물까지 주워 먹게 된다. 그리하여 아사 감옥이 그 어떤 감옥보다도 깨끗하다는 것이다. 다 먹어 없애기 때문에. 그렇게 인간의 고귀함을 짓밟고, 동물적 본능과 가장 근접하게 다가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로 아사 감옥이다. 아사 감옥이나 오가작통법이나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는 측면에서는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을 고안해 내는 인간의 치졸한 악함 때문에, 나는 오가작통법에 얽힌 배신의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인간의 나약함과 본성적인 악함에 치를 떨며 절망하곤 했던 것이다.

와. 그래서 생각을 못 했다. 오가작통법을 파훼하는 사람들이 그 뒤에 있을 것이란 것은 의식 위로 손쉽게 올라오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너무 놀라웠고, 감사했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유튜브를 켰는데, 위라클의 새로운 영상이 알고리즘에 떴다. 다리가 절단됐는데도 열심히 살아가는 어느 청년과 그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그 아버지가 인터뷰 중에 한 말이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했다. “절단 수술을 끝난 아들을 다시 보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공황이 왔다. 그런데 다시금 생각해 보니, 아들이 더 큰 일을 당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절단하는 것에서 그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라는 말이었다. 그 어떤 절망 중에서도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주변에 그득그득했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역사였고, 지금 우리가 함께 누리고 있는 이 시대였다. 사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고 행복한 일인가.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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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쓰자면..


요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추천 게시물로 뜨는 글타래들을 가만히 보면, 서로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글들이 정말 많다. 비상식적인 시어머니,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집주인, 정신 나간 선배, 돌아이 같은 직장 상사, 개념 없는 부하 직원. 그럴싸한 수많은 사례가 하루가 멀다하고 추천글로 뜬다. 인스타그램 추천 게시물은 물론이고, 개드립 같은 커뮤니티에서 인기 게시물만 모아놓는 게시판에서 주로 올라오는 글도 가만히 보면 그런 류의 ‘혐오 조장’ 글들이다. 그런 글들 보고 있으면 이 세상에 여성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남성은 얼마나 말이 안 통하며, 젊은 세대는 얼마나 개념이 없고, 기성세대는 상식이 없으며, 직장 상사는 무대포로 막무가내며, 부하 직원들은 월급만 뜯어먹으려고 하며 일할 생각은 1도 없는 이기주의자들인지 모른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설파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그런 글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레가툼 번영 지수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교육 분야에서 세계 2위, 보건 분야 세계 4위 등 상위권을 차지했으나, 그중 사회자본 분야에서 142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사회자본 분야 평가에 활용되는 항목은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도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사회 공익의 신장을 위해 노력한다고 믿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해당 평가에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상인들이 적절한 가격에 좋은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믿지 않으며, 정치인들이 국가 시스템을 더욱 최적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믿지 않으며, 종교인들이 종교적 신념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인들은 고객들을 속여먹으려 눈을 부라리고 있고, 정치인들은 한몫해 먹으려고 뒷구멍으로 수작을 부르고 있으며, 종교인들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는 쪽에 오히려 가깝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야말로 절망을 설파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사람들이 점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세상에 얼마나 절망이 많으며, 인간이 얼마나 동물에 가까운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희망이 많고, 인간이 얼마나 고귀한지 발견하는 것이 더욱 바른길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사회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