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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고 동반하라. 소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타자화의 괴력이 드러났던 베트남전의 한 사례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 군인들은 한편으로 표현하자면 용맹하고, 또 다른 쪽에서 바라보자면 무자비하기 짝이 없는 군인들이었다고 한다. 그 군인들은 베트콩들을 수없이 학살하고 밤이면 군부대를 지키기 위해 부대 앞에 보초를 세우고 잠에 든다. 이제 이야기는 그 보초들에게서 시작된다. 부대 앞에는 이미 베트콩들의 시체가 즐비하다. 그러나 보초는 그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돌이나 풀이 들판에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수채화의 배경과 같이 아무런 초점이 맞춰지지 않던 무의미한 물건 같은 시체들 사이에서 국군의 시체를 하나 발견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이제 국군 뿐 아니라 저 돌덩이나 다름없게 느껴졌던 베트콩들의 주검 하나하나도 방금 전까지 살아있고 숨 쉬고 욕망하고 갈망하며 움직이던 사람의 시신이라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람’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지 못했던 베트콩들이, 그사이에 숨어 있던 단 하나의 국군 시체로 말미암아 타자화라는 장벽을 허물고 연약한 감정을 뒤흔들며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다. 극단적인 공포를 몰고 말이다. ‘나와는 상관없다!’는 관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인간은 본능에 각인된 배타성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 왔다.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본능인 동정심, 공감 능력들을 총동원하여, ‘우리’, ‘나와 상관있는 사람’의 범주를 어떻게든 좁게 가져가며 반대급부로 소속감을 쟁취해 가려고 하는 배타성의 본능과 투쟁해 왔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는 소설은 나와는 상관없던 한 사람의 인생 안에 우리가 함께 걷도록 초대한다. 소설의 1인칭 화자(이 사람을 주인공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다.)는 오랫동안 친구였지만 어느새 멀어지고 기억에서 희미해진 친구에게 자신의 스탠드 코미디쇼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미 정서와 공감을 주고받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메말라 버린 관계라는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참석하게 된 스탠드 쇼가 시작된다.

소설은 스탠드 쇼의 시작과 함께 시작하여, 스탠드 쇼의 마무리와 함께 끝난다. 코미디를 늘어놔야 하는 쇼에서 인생의 전반을 이야기하며, 잊었으나 다시 떠오르는 슬픔에 차오르는 벅차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다른 여러 쇼 관객이 항의하면서 공감은 위기를 맞는다. 쇼가 뭉그러질 것 같은 위기감을 곳곳에 배치하면서 작가는 주인공의 인생 그 자체가 갖는 위기감과 더불어 2중의 긴장감을 제공한다. 결국 한 초라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있기 힘들어하는 관객들이 떨어져 나갔다는 소식이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보도되며, 주인공의 인생에 끝까지 동반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어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소설을 덮을 무렵, 남아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독자인 나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에 미안할 정도의 공감의 책무를 느끼게 된다.

사실, 특정 문화권에 종속되지 않는 보편성을 갖춰야 소설이 세계적으로 유통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는 그것이 소설 유통에 있어서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상실의 시대〉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 확인했었다. 2025년, 인도에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해도 뭐 그냥저냥 읽힐 수 있는 극적인 보편성. 그것이 먹힌다는 것을 〈상실의 시대〉는 충격적으로 일깨워주며 마치 새 시대 문학의 아이콘처럼 등극했다. 마치 각 문화의 특수성과 고유함을 내세우는 것은 한물간 스토리텔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처럼.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를 보면서, 어쩌면 그와는 반대로 인간의 슬픔이 특정한 사건과 문화와 상관없이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므로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역방향의 진출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이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이야기하는 것이 소설의 주된 테마인데, 엄마는 사실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다. 마치 그 역사적 위기에 휘말려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돌아온 사람을 향해 ‘화냥년’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우리의 역사에서 발견되듯, 엄마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만 같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저항하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면서 다닌다. 그 엄마를 위해 항상 물구나무를 서고 엄마를 웃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아들, 주인공의 동반, 그리고 공감. 그리고 그 주인공에게 동반하지 못했고 공감하지 못했다는 1인칭 화자의 죄책감. 그 감정이 소설을 관통한다. 저 수억만 리 머나먼 땅에서 일어난 이야기에 괜히 오늘 내 마음이 저민다. 그게 소설의 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