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론 나는 이빨 꽉 깨물고 동기 모임을 안 나가는 사람이라, 말할 자격이 있는가 고민이 되긴 하지만… 동기 모임에 안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동기 모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로 활력을 불어넣는 대화를 창출해 낼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자정적 성찰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안 나오는 사람은 계속 안 나온다는 문제의식 앞에서, 안 나오는 사람을 문제시하는 경우가 있어 슬퍼질 때가 있다. 동기 모임에 안 나오는 신부는 사제적 삶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둥, 꼭 동기 모임 안 나오는 사람이 결국 사고 치고 나가더라는 둥. 타인을 죄악시하며,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몰면, 진단도 간단하고 대처 방안도 명쾌해진다.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문제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면, 조직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갈수록 보수화되는 청년 세대를 바라보며, 청년들이 문제고 청년들에게 어떤 결함이 있는 것이라 손가락질하는 기성세대의 완고함이 그 안에서 보이는 것만 같다. 교황님 자서전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요즘 젊은 세대가 종교와 거리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우리는 세속화를 탓하기보다 우리 삶이 보여 준 증거에 대해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현대의 도전을 이해하며, 대화에 열린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합니다. 두려움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 모두 밖으로, 자신들의 안전지대를 벗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열린 마음에서만 진정한 조화가 피어날 수 있습니다.”
교황님이 다시금 엄청나게 개방된 분이었다는 것을 감탄하며, 다시금 우리네들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 왜 성당에 청년이 없는가. 그런 질문 앞에서 우리는 ‘청년들이 바빠서. 청년들이 종교 생활에 관심이 없어서. 청년들이 세속화되어서.’ 등등등 청년들의 문제점을 찾기 바빴던 것은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항상 나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