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관물: thecrimson

청년들이 동굴 밖으로 나오는 것은 가능한가? 소설 〈표백〉

20년도 훨씬 더 된 일이지만 기억에 뚜렷이 각인된 질문 중, 소설 수업 중에 현대소설 강의하시던 선생님께서 던지셨던 질문이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가? 동굴 속에 들어가서 원시적 삶으로 회귀하는 선택 말고, 이미 사회 안에 부속처럼 맞물려 살아가는 일개 개인이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가능한가. 결국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조에서 탈피한다는 것은 이상향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런 내용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했던 어린 나로선 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구조적인 모순이 가득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목소리는 오랜 시간 단절 없이 이어져 왔다. 심지어 종교적 관점에서 기성 사회에 대항한 반란도 많았다. 묘청의 난이랄지, 아니면 궁예의 첫 시작도 사회 모순을 종교적 이상으로 개혁하려던 열망에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서 완전히 새로운 체제를 제시했던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아무리 모순 속에서 고통받는다 하더라도, 내가 발 딛고 있는 땅바닥을 없애버리는 개혁을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기존 체제의 고리 안에서 크기만 다른 갖가지 파장 몇 개를 불러일으키며 모순의 정도를 완화하는 것이 우리네 개혁의 발걸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2025년이 되었다. 이 시대의 키워드는 청년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거부, 출산율 급락이라는 표면적인 현상 밑에 깔려있는 청년들의 깊은 좌절감을 알아보지 못하고, 기성세대는 ‘결혼이 얼마나 기쁜가~’를 부르짖으며 혼자 살 것을 독려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단속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남녀 갈등이 청년 세대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되는 것도 결국 청년들의 좌절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터지기 일보 직전의 불만이 터져나갈 곳을 찾지 못하고 내부 총질로 번져가는 현상이 젠더 갈등의 본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소설 〈표백〉은 2011년도에 발표된 소설인데도, 역시 시대를 앞서 바라보는 예술의 결정체답게, 이 시대를 너무나도 잘 표상한다. 청년들의 좌절감이 아무리 깊어진다고 한들, 청년들이 이 사회의 모순적 구조 안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성찰 앞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결국 이 사회를 돌리는 또 하나의 부속으로서 생생한 젊음이 내뿜는 에너지를 차출당하고, 언젠가 늙어서 또 다른 청년 세대가 올라오면 정리해고니, 은퇴니 하는 말로 퇴물 취급당하는 것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눈앞에 두고 사는 뻔한 운명인데, 특히나 이 시대의 청년들은 부속으로 사는 것조차 힘겹다.

이 사회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항의 어린 반란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소설 〈표백〉은 답한다. 그것조차 불가능하기에 결국 자기 자신을 부숴버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자기 파괴라는 슬픈 자조가 소설 내내 과격한 설정을 통해 이어진다. 멀쩡했던 청년들이 사회적 성공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한 자리에 아득바득 올라간 후, 날짜를 맞춰 차례로 자살해 버린다는 설정. 그 격정적인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답답한 현재와 미래가 엿보인다.

20~30년 전에, 우리가 아직 경제적 역동성이 남아있을 시절, 이미 그러한 생동감을 잃어버린 일본을 바라보며, 일본인들은 서로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그러면서 그 현상은 결국 일본 사회가 극단적으로 폐쇄적이면서 동시에 정적인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와 같다는 진단을 내렸었다. 움직임도 없는데 외부를 향해 열려있지도 않은 사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고요히 살기 위해, ‘민폐’를 끼치지 않고 내 바운더리 밖으로 나오지 말 것을 사회가 강요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놀랍도록 한국 사회가 가고 있는 길과 비슷하다. 이미 우리 사회가 ‘민폐’에 예민해지고 있다. 물론 공중도덕에 대한 감각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허허~ 웃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경제적 여유, 심리적 여유, 사회적 여유가 고갈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여유가 사라진 자리를 각 개인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 통제와 제재가 채워나가고 있다.

그 답답한 사회를 평생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이제야 직면하게 된 청년들의 한탄이 심상치 않다. 청년들의 자기 파괴 말고 우리가 줄 수 있는 답이 과연 있기나 하느냐는 소설 〈표백〉의 호통이 15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처참하다.

2025.4.30.

물론 나는 이빨 꽉 깨물고 동기 모임을 안 나가는 사람이라, 말할 자격이 있는가 고민이 되긴 하지만… 동기 모임에 안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동기 모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로 활력을 불어넣는 대화를 창출해 낼 능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자정적 성찰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안 나오는 사람은 계속 안 나온다는 문제의식 앞에서, 안 나오는 사람을 문제시하는 경우가 있어 슬퍼질 때가 있다. 동기 모임에 안 나오는 신부는 사제적 삶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둥, 꼭 동기 모임 안 나오는 사람이 결국 사고 치고 나가더라는 둥. 타인을 죄악시하며,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몰면, 진단도 간단하고 대처 방안도 명쾌해진다.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문제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면, 조직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갈수록 보수화되는 청년 세대를 바라보며, 청년들이 문제고 청년들에게 어떤 결함이 있는 것이라 손가락질하는 기성세대의 완고함이 그 안에서 보이는 것만 같다. 교황님 자서전 마지막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요즘 젊은 세대가 종교와 거리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우리는 세속화를 탓하기보다 우리 삶이 보여 준 증거에 대해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그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현대의 도전을 이해하며, 대화에 열린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합니다. 두려움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 모두 밖으로, 자신들의 안전지대를 벗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열린 마음에서만 진정한 조화가 피어날 수 있습니다.”

교황님이 다시금 엄청나게 개방된 분이었다는 것을 감탄하며, 다시금 우리네들의 모습을 돌이켜 본다. 왜 성당에 청년이 없는가. 그런 질문 앞에서 우리는 ‘청년들이 바빠서. 청년들이 종교 생활에 관심이 없어서. 청년들이 세속화되어서.’ 등등등 청년들의 문제점을 찾기 바빴던 것은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항상 나였다는 것.

젊은 보수를 향한 진단. 그들에게 전할 사과문이 필요하다

내가 20대일 때, 투표를 하면 항상 압도적인 표차로 내가 지지했던 후보가 떨어지는 모습을 티비로 지켜봐야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암담한 현실이었다. 경상도 지역의 인구가 많기 때문에 진보의 지지세가 약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해소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진단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매 선거 때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을 답답해했지만, 단 하나의 돌파구가 어렴풋이 보였으니, 그것은 보수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이 돌아가실 때가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였다.

과연 그 예측은 틀리지 않아서, 내가 40대가 되니 이제는 40~50대의 진보 세력이 인구수로 보수를 압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 틀린 것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점점 진보로 기울 줄 알았으나 그렇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치고 올라오는 바로 밑 세대가 놀랍도록 보수적이었다. 특히 남성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진보로 기울 줄 알았던 우리 사회는 이제 보수화라는 대세 속에 간신히 진보의 수적 우위를 잠시 누리고 있는 긴장 속에 놓여 있다.

한 세대 아래 청년들은 왜 보수화됐을까? 우리 세대는 그것을 교육 탓으로 돌렸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70~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가치와 수구 세력의 악랄함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결함이라고 취급했다. 결함을 수정해 주면 해결될 어떤 문제라고 취급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일찍이 보지 못한 ‘기운 넘치는 팔팔한 가스통 할배’를 만들어 냈다. 남성연대였나. 신흥 남성 우위 보수 세력을 이끄는 어느 젊은 대표는 수시로 웃통을 벗어제끼며 남성성을 과시한다. 몸짱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던 어떤 요리 유튜버를 한방에 때려눕혔다는 쟁쟁한 무력을 전하는 시정담이 한동안 뉴스에서 화재였다. 그의 인스타에는 잘 만든 근육을 자랑하는 포스팅이 꽤 여러 개 있다. 그뿐만 아니다. 문 전 대통령 양산의 자택 앞에서 대형 스피커로 욕을 퍼부으며 난리를 쳤던 어느 보수 논객도, 항상 옷을 벗고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보이곤 했다. 그들은 그런 퍼포먼스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온몸으로 던진다. 그들이 구시대의 보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로 생겨난 새로운 신진 세력이라는 선언 말이다. 그들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중인 셈이다.

그들에게는 문제나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이었다. 왜 그런 말을 하고 싶어졌을까.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단군 이래 최전성기를 지나고 있다는 아이러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아니 단군 할아버지 이래 부모보다 못사는 자녀는 없었다. 특히 현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거의 모든 자녀가 부모보다 월등히 잘 살았다. 사회는 팽창하는 중이었고, 제 아무리 유리 천장이라고 해도 그 유리 천장의 천고가 계속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만을 희석할 수 있었다. 집값은 계속 올랐지만, 부모보다 훨씬 잘살게 된 젊은 세대는 집을 어떻게든 샀다. 젊을 때 저렴한 가격에 집을 샀던 부모 세대가 늙어서 집을 팔면 노후 대비가 됐다. 말하자면 자녀 세대에게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노후 대비를 했던 것이지만, 자녀들이 훨씬 부자였기 때문에 그 구조적 모순이 힘으로 극복이 됐던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 최고의 전성기에 도달했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이제 우리 사회가 내려갈 때가 됐다는 말이다. 새로운 세대는 이제 건국 이래 최초로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운명이다. 높아진 집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됐고,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다는 3포, 4포가 이젠 위협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3포, 4포라는 말은 이러다 진짜 저것 때문에 결혼 못 하는 거 아냐 하는 우려 때문에 나온 말이었는데, 이젠 누구나 맞닥뜨려야 하는 냉엄한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이 모든 문제가 기성세대, 특히 현시대의 이념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40~50대의 문제로 보일 것이다. 우리가 새로 꺼냈던 모든 어젠다들이 자기들을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원인처럼 보일 것이다. 남녀평등, 이념적 평등 등이 나아갈 방향을 잘못 정해 배가 좌초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처럼 보이는 것도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소위 PC,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진절머리 치며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것이 우리 세대가 추구했던 방향 중 하나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마디로, 몰락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배에 올라탄 그들의 좌절감이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 세대의 책임은 없는가? 과연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몇 개를 다녀야 하고, 이제는 7세 고시까지 봐야 하는 이런 사회가 만들어진 데에 우리 세대의 책임은 하나도 없는가? 당연히 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그에 대해 절대로 책임을 지려고 한 적이 없다. 미안하다고 한 적이 없다. 그들이 보수로 기울며 격렬히 울분을 통할 때 우리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날 때마다, 그 어떤 지도자도 수능 같은 제도에 여러분을 옳아매 고통스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이제는 즐기라는 둥, 이제는 해방이라는 둥 은근히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는 신호만 보냈을 뿐이다. 힘들어 하는 청년 세대의 방황에 ‘쫄지 말라’는 것은 사실 답으로서 부족하다. 쫄아든 그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쫄게 만든 우리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곧 고갈되기에 청년들이 더 많이 부담해야 할 것 같은데, 노인 세대 중 소액만 부었는데도 몇십 배씩 수령해 간다는 소식이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다. 예상대로 젊은 세대들에게 분노의 트리거가 되어 난리가 났다. 과연, 우리 세대 중 누가 미안하다고 그들에게 이야기했을까? 아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끌고 와서 미안하다, 이런 세상을 물려줘서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오늘도 이민자들 다 때려죽여야 한다고 날뛰는 온라인 게시판을 보면서, 그들의 분노에 고개가 숙여진다. 미안하다고 말할 줄 몰라서.

우리는 어쩌다 괴물이 되었나, 영화 〈더 메뉴〉

괴물은 처음부터 괴물로 태어나지 않는다.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령, 유다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팔아먹을 생각으로 제자 공동체에 난입한 괴물이었을까? 아니었을 거다. 처음에는 사랑을 향한 갈망으로 벅차오르며 여느 제자와 다를 바 없는 바 없는 시작을 했을 거다. 하지만, 어쩌나.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돌아서면 다시 만나게 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한번 두번 악을 선택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서서히 존재가 악으로 기운다.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돌아가기 어려운 길 한가운데에서 괴물이 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거다.

예전에 어느 캠프에 갔을 때다. 그날 프로그램은 카누를 타고 호수 위에서 벌이는 물놀이였다. 시작부터 험난했다. 학생들은 배에 타는 것도 꺼려했고, 작은 물방울 하나라도 튀기면 기겁을 하며 항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거부감은 허물어지고, 웃고 떠들며 서로 물도 뿌려가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물놀이를 끝내고 내려온 우리들에게 그날 지도 신부님은 뒤통수가 얼얼한 후속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여러분이 오늘 물에 젖어 들었던 모습이 바로 악에 젖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악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지만, 악에 한두 번 노출되기 시작하면 점점 무뎌집니다. 서서히 큰 악을 저지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게 되고, 급기야는 다른 사람까지 악에 끌고 들어가게 됩니다. 악은 그렇게 확장되어 가는 겁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도 있었을 테지만, 아주 작은 긍정적인 피드백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예민한 성취감으로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일상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부담감은 익숙함에 묻히고 예민했던 성취감은 반복되는 횟수에 퇴화된다. 빈자리는 사무적인 관료의식이 채워넣 을 수도 있고, 습관적인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권위주의가 채워 넣을 수도 있다. 첫 설렘으로 가득했던 뉴비는 그렇게 서서히 생동감을 잃고, 구태의연한 중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더 메뉴〉에 등장하는 쉐프, 슬로윅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생동감을 잃은 삶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이라고 느끼며 비참한 침통 속에 잠겨 있다. 그리고 그 생동감을 앗아간 주범은 ‘생각 없이 찬탄을 쏟아내는 비판 의식 없는 팬’ ‘돈으로 그 생동감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상 그 뉴비의 열정을 백화점 서비스 제공 취급했던 자’ ‘무엇이든 비판하고 비평하려고 하며 고압적인 자세로 군림했던 평가자’ ‘아무 공감 없이 뉴비의 열정을 소비만 했던 생각 없는 소비자’ 등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각 그룹에서 대표적인 사람을 선발하여 격리된 섬에 위치한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한다. 이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이의 분노가 이들과 함께 ‘옥쇄’하러 가는 죽음의 논개 작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 마치 팩에 든 우유를 빨아 먹듯 뉴비의 생동감을 빨아먹는 이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수동적으로 빨아먹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뉴비는 암묵적으로 자신의 생동감을 내어주는 주동적인 공범이다. 무작정 찬탄을 쏟아내는 ‘추종자’들의 찬사에 귀를 한 번 기울일 때, 자신의 열정을 백화점 서비스 취급하는 사람에게 서비스꾼처럼 허리를 조아리며 그들의 정당하지 않은 취향을 무조건 맞춰주려고 할 때, 고압적인 자세로 평가나 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평가에 굴복할 때, 그럴 때 자신의 열정을 스스로 상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마음으로 한참을 살아오던 뉴비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길까지 오고 나서야.

초대받지 않았는데 의도치 않게 그 섬에 발을 들이게 됐던 주인공 밀스는 여러 과정을 거치다 문득 알게 된다. 이 쉐프의 광기는 뉴비로서 누리던 첫 설렘을 잃은 상실감에 따른 발버둥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이제 죽어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 쉐프에게 ‘치즈버거’를 요구한다. 쉐프가 요리사로서 처음 요리했던 그 요리. 만들면서도 학생으로서 연습만 하던 요리를 진짜 요리사로서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기쁨에 웃음이 지어지던 그 요리. 요리를 곧 맛볼 고객들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지어지며 더 큰 설렘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줬던 그 요리. 이윽고 자신의 요리를 맛보는 고객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던 그 요리. 너무 맛있다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고객들의 반응에 더욱 큰 열정으로 다음 조리를 기다리게 했던 그 요리. 그게 바로 ‘치즈버거’였다. 결국, 죽음의 파티에서 그것을 알아봤던 그녀만 살아서 나가게 되었다는 설정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제 알게 된다. 처음이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누구나 처음 시작하는 뉴비의 단계는 금방 벗어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처음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숨 쉬던 열정과 생동감이었다. 어제도 했었고 내일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자각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동감. 그것을 잃으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가난을 말하려면 가난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에 대해 말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가나 맹목적인 근본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생동감을 잃고 뒤로 물러서서, 꿈꿨던 삶을 실제로 사는 대신, 당위적인 목표만 매번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하고 입만 털면 이론가 혹은 근본주의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유명 쉐프지만 사실은 쉐프로서 살지 못했던 슬로윅이 아닐까 싶었다.

아, 사실 영화가 다 우리 이야기, 내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슬펐다.

2025.4.25.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이주민 2세대인 프란치스코 교황님. 이주민으로서 정체성이 분명하셨다던 교황님의 이야기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생각을 이어가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 〈엄마 찾아 삼만리〉가 생각난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아르헨티나에 돈 벌러 떠났던 엄마를 찾아가는 소년의 이야기였다. 아무리 지켜봐도 간발의 차이로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좌절하는 소년의 이야기가 어린 시절이었는데도 마음 아팠던 기억이 난다. 저러다 끝내 못 만나고 만화가 영영 끝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는데, 기어코 엄마와 감격의 포옹을 하며 마무리됐던 기억도 난다.

이제보니 바로 저 소년이, 교황님 세대였구나… 싶다. 제노바에서 출발해서 스페인을 찍고 아프리카 어딘가를 경유해서 브라질에 도착하여 배를 갈아타고 한참을 가야 도착하는 멀고 먼 아르헨티나까지, 제노바에서 밀려난 ‘주변인’들의 노곤한 삶. 그것이 이민자들의 삶이었겠지.

그리하여 소외된 이들에게 교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외치는 교황이 준비된 것이겠지. 하느님의 섭리란 놀랍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엄마 찾아 삼만리〉나 다시 한 번 볼까.

프란치스코 교황님 자서전 〈희망〉

악을 선으로 이루시는 하느님

70~80년대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군부독재가 판쳤던 동시대 아르헨티나에서, 불의가 선명해지면서 반대급부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의 대상 또한 분명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명백한 독재가 횡횡하게 되면, 시대적인 선택은 진보, 보수 등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 사이에서 그 어느 지점을 고르는 ‘정치적 성향의 선택’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전기를 보면서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희망〉이라는 제목의 전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분의 삶의 발자취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코드가 그분이 살아온 아르헨티나의 시대적 배경은 ‘정의냐 불의냐 사이의 선택’을 요구하는 시련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이 정의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납치되어 산 채로 비행기에서 떨어져 죽고 시신으로 바닷가에서 발견되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선택지가 둘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침묵이냐, 정의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런 상황에서 정의를 선택하는 것이 곧 복음을 증거하는 것임을 절절하게 체험하셨던 분이다. 그런 분에게 진보, 보수 사이에서 중립을 요구하며 노란 리본을 뗄 것을 요구하는 말은 얼마나 위선적으로 들렸을까.

그러나 그분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의 그 자체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대목은 그분을 보통의 사회운동가와 근본적으로 구분되게끔 이끈다.‘세상 모든 문제가 정의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특히 악의 물결을 멈춰야 할 때는 누군가가 자신의 의무를 넘어서는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93쪽)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는 사랑에 있다. 사랑은 개인 간에 나누는 감정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개개인 간의 감정이 어떻게 사회 전체를 넘나드는 파형을 이룰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을 향한 애정이 근본적인 치료제라는 것을 그분은 보여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 몇 차례 등장한 페론주의에 대한 비판은 의미심장하다. 페론주의가 처음 발표될 때, 대통령은 해당 정책이 가톨릭 사회교리에 위배되지 않는지 지역 교회 주교에게 확인까지 했다. 그러나 왜 페론주의는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를 절벽으로 밀어 넣었는가. 그것은 정답이 불의한 구조 그 자체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가난을 바라보며 문제점을 분석하는 대신 가난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이들과 직접 함께 살며 체험하지 않고서는 가난을 말할 수 없다. 이런 직접적인 체험이 없다면 우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가나 맹목적인 근본주의자가 될 위험이 있다.” (240쪽) 이 구절이 페론주의와 관련되어 나온 말은 아니지만, 교황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은 악을 선으로 이루시는 분이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마찬가지였다. 교황님은 가난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이탈리아 이민 2세대이신데, 책 머리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아르헨티나 이민을 위해 배를 가득 채운 이주민들을 태우고 항해를 하던 중, 배가 침몰하여 거의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사실 교황님의 부모님이 해당 배의 승선 티켓을 구입하셨다는 것이다. 재산 매각이 늦어지면서 다른 배를 타게 되었는데, 사실 교황님은 태어나지도 못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교황님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정체성은 ‘이주민’이자 ‘변방으로 밀려난 주변인’이라는 것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어쩌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선택한 것은 이탈리아 추기경단의 마지막 곤조였을지도 모르겠다. 유럽 밖에서 교황을 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지만, 이탈리아인만큼은 마지막까지 포기 못 했던 미련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 한계 안에서 하느님은 오히려 ‘이주민’이자 ‘주변인’으로서 인간을 깊이 사랑하는 교황이 람페두사를 방문하고 노란 리본을 매게끔 이끄셨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계획을 뛰어넘는 성령의 활동 아닐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음에 깊이 감사드린다.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또 한 분 가셨다.

2025.4.17.

부활 선물로 받은 《마리아는 길을 떠나》라는 책을 살펴보고 있다. 아직 리뷰 쓸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숫자 조합이 눈길을 끌기에, 기록을 남겨놓고자 한다.

7 – 수태 예고를 전하는 루카복음의 대목에는 지명, 이름 등을 표현하는 고유 명사가 총 7개 등장한다. 가장 완성된 형태를 표현하는 의도적인 배치란다.

365 – 성경 전체에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뜻을 담은 각종 표현이 365회 등장한단다. 매일 주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이라고 이해된댄다.

신학적으로 유의미한 숫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지 못한 흥미로운 의미부여다.

2025.4.11.

몇 일 전에 교구장님 탄핵 메시지에 관련된 글을 하나 올렸는데, 몇몇 피드백을 받았다. 첫 번째는 한국전쟁 때 피아식별을 해야만 했던 아픔은 그야말로 적과 아군의 식별 문제였는데, 이번 탄핵 정국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비유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었다. 사실 이번 정국을 ‘옳다, 그르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양심적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는 것 자체가 한 쪽 편을 들어주는 모양새가 된다는 이야기와도 맥이 닿는 지적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교회가 여전히 제 몫을 할 수 있다고 믿고 기대하기에, 더 많은 것을 희망하며 하는 소리라고 이해해 달라는 겸손한 첨언이 더욱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차라리 분노에 차 있는 호통이었으면, 속으로 정신승리라도 했을텐데.

정의를 갈구하는 거룩한 분노와 정화되지 못한 개인적 공허함에서 비롯되는 감정적 대응에 가까운 분노.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개인 내면에서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은 여전하다. 정국이 어느 정도 해소됐으니, 내적 문제에 근본적인 숙제를 안고 사는 우리라는 것을 되새기자고 호소였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문제에 대한 충분한 예언자적 소명의 실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다시금 마음이 아파진다. ㅠㅜ

2025.4.9.

여의도에 벚꽃이 만개했다. 지난 주 금요일까지만 해도 조금 모자란듯한 느낌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개화가 기준점이자 척도가 되어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난다. 매일 퇴근만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보냈더니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여기까지 와부럿다. 진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의 목표였나 싶은 반성이 든다. ‘목적이 이끄는 삶’ 뭐, 그런 책이라도 다시 읽어봐야 하나 싶다. ㅋㅋ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한국전쟁 중에 산중에 있는 마을은 한밤중에 방 안에 들어오는 군인들이 가장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그들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눈에 후레시를 직접 비추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후 묻는다. “어느 편이야?”

이 질문에 잘못 대답하면 온가족이 몰살 당한다. 국군에게 ‘공산당 편이에요.’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산중의 가난한 민중에게 목숨을 건 선택은 너무 가혹하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런 거 잘 몰라요. 어느 편도 아니에요.” 하는 식의 영구중립 선언은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50% 확률로 온가족의 목숨을 거는 러시안 룰렛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매일밤 벌어진다. 아군에 설 것인지 적군이 될 것인지 선택을 강요하는 폭력이 한국전쟁의 핵심이다. 한국전쟁이 그 당시를 살던 온국민의 무의식에 트라우마로 박아넣은 병폐다. 이념이란 스펙트럼 같은 것이어서 수많은 중간치를 갖기 마련인 것이나, 어느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전쟁 현장의 재현이 되었다.

요즘 탄핵 정국으로 매우 시끄럽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의 독기어린 눈빛 속에서 “어느 편이야?” 하는 질문이 들리는 것만 같다. 모든 선택은 우리 편이나 아니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편에게 하는 말이냐, 저 쪽 편에 하는 말이냐 하는 질문이 식별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교구장님이 얼마 전에 탄핵 관련하여 메시지를 발표하셨다. ‘우리의 적은 서로가 아니라, 우리 사이에 자리잡는 증오와 분노의 악습’이라는 내용이었고, 나는 그것이 너무나 당위적인 내용이라서 오히려 호소력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위급할 때 뭐하다가 상황이 안정되니 이제야 나타나서 숟가락을 얹느냐.’ ‘탄핵 반대 세력을 위로하려고 한 말에 불과하다.’ 등의 글들이 피드백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본인이 신부라는 어떤 분은 주교님들이 탄핵 이후 120여일 간 어떠한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동안 침묵했던 죄를 고백”해야 한댄다. 그 피드백들 사이에 숨어있는 ‘남의 편’에 대한 분노가 서슬퍼렇다는 느낌이 들었다.

흔히 아직도 빨갱이 운운하면서 우리 사회에 간첩과 공산당이 숨어서 활동한다고 믿는듯한 보수주의자들을 향해, 그들이 한국전쟁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하곤 한다. 아직도 반공주의 이념에 따라 현대 사회 문제에 대응하려는 그들의 인식 수준이 전쟁 때 사용하던 문법이라고 비판하는 거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진보와 보수가 공유하는 문제다. 피아 식별이 가장 우선시 되는 상황은 전쟁 말고는 없다. 아직도 우리 정치 환경은 전시 상황과 같다. 이념이란 연속적 스펙트럼의 한 가운데에서 어딘가 자리를 점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

우리 편이면 약자와 함께 하는 것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저 쪽 편이면 기득권이고 그들 표현을 빌리자면, ‘WYD 개최를 위해 기득권에 아첨하고 몸사리는 것’이라고 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 공격적인 배타성이 두려울 정도다. 성탄 메시지, 신년 메시지, 사순 메시지에 거듭 탄핵 정국 관련하여 규탄하는 메시지가 실렸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다.

한창 탄핵 정국 중 한남동에서 시위가 한창일 무렵, 꼰벤뚜알의 어느 신부께서 불을 밝혀 시위에 참여하던 자매님들에게 화장실을 개방하시는 모습이 찍인 사진이 뉴스에 실렸다. 신부께서 콘서트장에서 쓰던 응원봉(?)을 들고 가셨고, 뒤에 따르던 이들은 자매님들이었기에 당연히 진보 계열 시위자들을 응원하는 모습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역시 신부는 다르다는 둥 천주교가 희망이라는 둥 열광했다. 그런데 해당 신부님께서 몇 일 뒤에 평화방송에 나와 말씀하시길, 그날 보도가 나간 이후 수도원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댄다. 빨갱이 신부, 정치 신부 운운하며 격한 표현을 쓰는 항의가 그야말로 빗발쳤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신부 말씀하시길 ‘억울하다. 사실 그 날 화장실은 진보 진영 뿐만 아니라 보수 쪽 시위자들에게도 다 개방했고, 심지어 경찰들에게도 다 열어줬다.’고 하시는 것 아닌가. 나는 그 이야기가 모든 것을 우리 편 니네 편으로 모든 사건을 해석하려는 우리네 경향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눈에 후레시를 비추며 서로 묻는다. “넌 누구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