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3.

겨울이 되면 내가 속해 있는 사무실에서는 성탄 축제를 준비한다. 12월 24, 25일 양일간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서 진행하는 큰 행사다. 실무자로서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고, 반드시 실수하리라는 자괴감도 좀 있고 하여,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의무적인 통과의례로 매번 맞이하곤 했다.

그런데 재작년에 특별한 경험을 했다. 처음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봉사자들과 함께 행사를 치렀는데, 행사가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에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어느 자원봉사자가 말하길 “이렇게 뜻깊게 성탄을 보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이에게 봉사하고 나누면서 성탄을 보낼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하고 기뻤어요.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나눔을 듣고 정말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나에겐 의무감과 중압감으로 점철된 ‘일’에 불과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쁘고 행복하게 나눔을 실천하며 하느님을 체험하는 자리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점유했지만,이토록 마음의 흐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깊은 반성으로 돌아왔다.

성경에서 시간, 때라고 일괄적으로 번역된 단어는 사실 그리스어 원문으로는 둘로 나뉜다. Χρόνος(Kronos)와 Καιρός (Kairos)가 그것이다. 전자는 1분, 1초, 1시간에 따라 정량적으로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주관적으로 부여된 가치에 따라 다르게 흘러가는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그 봉사자와 나는 동일하게 48시간이라는 크로노스를 보냈지만, 그 안에서 얼마나 질적인 카이로스를 살았느냐는 전혀 다른 것이다. 죽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0에 수렴하는 시간을 보낸 나와 달리, 그 자매는 그야말로 영원한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오늘 맥도날드의 명동 지점에 온라인으로 주문한 햄버거를 수령하러 다녀오며, 명동에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즐비한지 다시금 실감하게 됐다. 정말 길이 가득 찰 만큼 빼곡한 백인, 흑인, 황인 등 전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관광지를 즐기고 있었다.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도 있고, 휴대폰 동영상 촬영을 통해 다시 못 올지도 모를 관광지의 모습을 휴대폰으로라도 영원히 담아놓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든 최대한 이곳의 먹거리를 맛봐두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예외 없이 거의 모든 사람의 얼굴에 유명 관광지에 드디어 입성했다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나에게 명동과 2025년 9월이라는 시공간은 어떠한가 반문해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최고의 경험이 되리라는 설렘이 가득한 공간에 24시간 발을 디딜 수 있으면서도, 무의미한 회의감으로 인생을 허비하지는 않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게 된다.

요즘, 가끔, 아주 가끔, 삶은 아주 아름답고 값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죽음 이후의 삶으로는 절대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가치가 이 세상의 삶에 있다는 교회의 가르침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얼마나 더 머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마지막 그때까지, 유명 관광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그 설렘과 그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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