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자 씨가 어느 프로그램에 나와서 했던 이야기 중 기억에 각인된 것이 하나 있다. 한창 방영되던 시절에 나도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던 ‘슈퍼선데이’에 출연할 무렵의 이야기다. 갑자기 슈퍼선데이의 주력 멤버였던 이영자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하차하여 그 당시에도 의아했었는데, 그 사연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거다.
이영자가 톱 코미디언의 자리를 차지하고 정상을 달리던 어느 날, 강호동이라는 신인 개그맨이 데뷔하여 슈퍼선데이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런데 담당 PD가 신인에 불과했던 강호동을 미친 듯이 밀어 주기 시작했단다. 이영자는 어느 순간 강호동을 빛내주는 조연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어느 날, 강호동이 이영자의 얼굴을 부여잡고 입에 만두 여러 개를 강제로 구겨 넣는 장면을 촬영하게 되었고, 그날 이영자는 연출자에게 항의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취급하면 난 하차하겠다.’ 그랬더니 PD 왈, ‘하차하세요.’ 그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하차를 결정했고, 그렇게 허무하게 슈퍼선데이의 톱스타였던 이영자는 한순간에 자리를 잃고 타 프로그램으로 떠나가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PD의 처사가 불합리했느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녀가 마주했던 삶의 무게가 참 공감되었다. 한창 잘 나가는 코미디언이라는 자부심을 한순간에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그것도 자기 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개입으로 내려놓음 당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얼마나 박탈감과 상실감에 휩싸였을까. 이영자를 놓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실 한 번 권력 맛을 보고 인생의 정점을 찍어본 사람은 그 고점에서 내려오기 참으로 어렵다. 과거의 영광을 부여잡고, 이제는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자신의 처지는 못 본 척하며, 여전히 하늘을 나는 새인 양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한국 사회에서는 과거에 그 사람이 지녔던 가장 높은 직책으로, 은퇴 후에도 불러주는 것이 관례라고 배웠다. 회장에서 물러난 지 10년은 족히 된 것 같은데, 여전히 회장님, 회장님 불러주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실상 정상에서 내려오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 모두의 모습을 반영한 것과 같다.
어느 신부님이 쓰신 노년의 영성과 관련된 책에서도 같은 내용을 봤다. 노년의 영성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무력해진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전성기 시절, 나의 말 한마디에 수십 명, 때론 수백 명이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갔다가 하는 권한을 행사했던 시절이 온전히 지나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제는 주변 사람 도움 없이는 한 사람 몫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우리가 노년에 도달해서도 그걸 못하고 있기에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지 못한다는 뜻 아닐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실 ‘내려놓음’이란 노년이 되어야 부여받는 숙제가 아니다.
이건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지난번 대선에서 총리까지 하셨던 분이 두 분이나 도전장으로 내고 대선에 나오셨다. 저게 무슨 추태인가 싶을 정도로 음모론만 반복하던 사람도 그중 한 명이었다. 묘하게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 대접을 받아봤다는 것이다. 마음 한편으로는 저 사람들이 대통령급 영전 맛을 못 잊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잠시 스쳐 가는 권력이 풍기는 향내조차도 잊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라는 생각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나라고 다를까. 잠깐 발령받아서 스쳐 가는 자리일 뿐이고, ‘내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내려놓는다는 것은 매번 어렵다. 알면서도, ‘왜 나만 내려놔야 하나.’ 하는 피해 의식이 핑계처럼 내려놓음을 막으며 자기방어를 부추긴다.
이영자는 슈퍼선데이에서 하차하고 잊혀가는 자신의 처지에 조바심을 냈는지 ‘지방흡입 스캔들’과 ‘반지 감정 스캔들’을 연이어 터뜨린 끝에 지상파 방송의 출연이 아예 끊기고 말았다. 한참의 공백기 후에 다시 나타난 그녀는 무리하지 않고 신중한 발언을 이어나가는 데 더해, 전성기 시절에 자신의 힘과 카리스마로 대화를 강제로 끌고 가던 진행 방식을 버리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는 방향으로 진행 방식을 바꾼 끝에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그녀를 보면서 모세가 생각난다. 이집트 왕자로서 떵떵거리는 권력 맛으로 세상을 살았지만, 사실은 노예로 부려지던 히브리 민족의 입양아라는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 후,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는 무려 80세가 될 때까지 광야에서 유목민으로 살다가 주님의 선택을 받는다. 어쩌면, 왕자로서 한없이 드높았던 어깨 뽕(!)이 다 내려놓음으로 제거되고 나서야 주님의 일꾼으로 쓰인 것이 아닐까.
아는데… 다 아는데… 참 어렵다. 다음 임지에서는 좀 더 내려놓을 줄 알게 되길…🙏